이..이게 다 뭐야?"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정체불명 침몰선, 탐사 시작하자 믿기 힘든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Quick Summary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 침몰선의 청자·화물표·음식물 흔적은 유물의 용도와 연대를 밝혀, 기록만으로 알기 어려웠던 고려인의 생활과 운송 체계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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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결론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 침몰선의 청자·화물표·음식물 흔적은 유물의 용도와 연대를 밝혀, 기록만으로 알기 어려웠던 고려인의 생활과 운송 체계를 복원했다.
📌 핵심 요점
- 청자 매병의 실용적 용도가 확인됐다. 매병과 함께 발견된 대나무 화물표에는 꿀을 담아 보낸 기록이 남아 있었다. 술이나 꽃을 담았을 것이라는 기존 추정에 식재료 운송 용도가 추가됐으며, 주전자와 받침의 세트 출토는 청자의 실제 사용 방식도 보여줬다.
- 생활용 청자는 대량생산의 흔적을 간직했다. 반복되는 문양은 틀로 찍었고, 그릇의 굽과 내부에 남은 흙 흔적은 받침을 놓고 포개 구운 결과였다. 최고급 청자뿐 아니라 일상에서 쓰던 대접·잔·접시의 제작과 유통도 확인할 수 있었다.
- 화물표와 문헌을 대조해 마도 1호선의 항해 연대를 좁혔다. 67개의 화물표에 남은 간지와 수신자 김순영의 활동 시기를 연결해 발송 연도를 1207년과 1208년으로 특정했다. 이 연대는 일부 청자 문양과 제작 방식이 기존 추정보다 늦은 시기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줬다.
- 음식물은 식생활과 계층별 소비를 함께 드러냈다. 젓갈의 뼈와 껍질, 메주, 벼껍질 등이 남아 있었고 화물표에는 음식물을 보내는 기록이 있었다. 대량의 젓갈은 운송 화물로 해석됐으며, 쌀과 메주 등은 귀족과 고위 관리에게 향한 식재료로 설명됐다.
- 발굴 맥락과 보존 처리가 해석의 토대였다. 조사단은 유물의 출토 위치와 포장 상태를 기록하고, 취약한 화물표와 수침 목재를 보존했다. 선체와 출발지 기록은 연안 운송을 설명하지만, 비정기 세곡선이라는 성격과 구체적인 침몰 경위는 추정으로 제시됐다.
🧩 배경과 문제 정의
- 고려 시대는 남아 있는 기록이 적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물품 사용 방식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 태안 마도 앞바다의 침몰선에는 청자와 음식물, 포장재, 화물표가 함께 남아 있어 생산·운송·소비의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 매병의 용도와 청자의 제작 시기에 관한 기존 추정을 실제 내용물 기록과 발송 연대로 검증하는 것이 핵심 문제다.
- 수중 유물은 형태가 남아 있어도 내부가 약해져 있을 수 있어, 출토 위치 기록과 보존 처리가 판독·분석의 전제가 된다.
🕒 시간순 섹션별 상세정리
1. 꿀 화물표가 바꾼 매병의 용도 해석
- 최고급 청자 매병이 용도를 적은 대나무 화물표와 함께 발견되면서, 꿀을 담는 용기로 쓰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술을 담았을 것이라는 기존 추정에 새로운 용도가 추가됐다 [00:50]
- 기록이 부족한 고려 시대의 생활상을 침몰선에 남은 실제 물품으로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 [02:26]
2. 갯벌 속 목선과 화물의 수중 발굴
- 지난 5월부터 10여 명의 전문 인력이 수중 발굴에 투입됐다. 약 5m 아래에서 짜맞춘 흔적이 뚜렷한 목선이 확인됐으며, 배는 남동 방향을 향한 채 비스듬히 갯벌에 묻혀 있었다 [04:00]
- 다이버가 유물 주변의 뻘을 제거하는 과정은 헬멧 카메라로 배 위 연구자들에게 실시간 전달됐다. 대나무와 새끼줄로 만든 틀 안에는 도자기 여러 개를 겹쳐 포장한 꾸러미가 남아 있었다 [05:20]
3. 원형을 유지한 두 청자 매병의 발견
- 7월 7일 발견된 상감청자 매병은 입구가 좁고 어깨가 넓은 형태였으며, 입구에는 봉합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닷속에서 상감청자 매병이 원형 그대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07:28]
- 옆에서는 음각 기법으로 만든 또 다른 청자 매병이 발견됐다. 두 매병은 위아래 방향을 서로 맞댄 상태로 겹쳐져 있었다 [08:09]
4. 매병에 동봉된 화물표가 입증한 식재료 운송
- 음각 매병 옆에서 먹글씨가 남은 대나무 화물표가 발견됐다. 달라붙은 뻘의 진공 작용으로 글씨가 수백 년 동안 지워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 [10:36]
- 화물표에는 내용물과 보낼 곳이 적혀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매병이 ‘성준’으로 불렸으며, 꿀을 담아 운송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1:07]
5. 어부의 발견에서 시작된 세 척의 고려선 조사
- 마도 앞바다에서는 추가 발견을 포함해 모두 세 척의 배가 확인됐다. 세 척은 반경 1km 안에 있으며 모두 고려 시대 배로 밝혀졌다 [12:54]
- 발굴의 출발점은 2007년 어부 심삼택 씨가 도다리잡이 중 그물에서 청자로 보이는 물건을 발견해 모아둔 일이었다 [13:57]
6. 출토 위치와 선상 생활을 함께 보여주는 유물
- 수중에는 도자기가 포장된 상태로 대량 남아 있었다. 발굴단은 가로·세로 1m 구획의 틀을 설치해 유물의 정확한 출토 위치를 기록했다 [15:28]
- 철제 솥과 숟가락, 대나무로 만든 상도 발견돼 선원들이 배 안에서 식사할 때 사용한 물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15:57]
7. 주전자와 받침의 완전한 조합이 드러낸 사용 방식
- 상감 기법으로 만든 표주박 모양 청자 주전자가 받침 접시와 두 개의 받침까지 한 세트로 포장된 상태에서 발견됐다 [16:41]
- 주전자와 받침 접시가 함께 출토된 것은 발굴 역사상 처음이었다. 받침과 접시 위에 주전자를 올리는 조합이 확인돼 최고급 청자의 실제 사용 방식을 복원할 근거가 생겼다 [17:51]
8. 생활용 청자에 남은 대량생산의 흔적
- 마도선 청자의 대부분은 최고급품이 아닌 대접·잔·접시 등 생활용품이었다. 대접의 굽과 안쪽 바닥에는 흙을 바른 듯한 흔적이 있었고, 동일한 연꽃 문양이 반복됐다 [18:31]
- 강진 도요지에서 확인한 제작 방식은 문양을 새긴 틀을 도장처럼 눌러 찍는 것이었다. 문양을 일일이 새기는 것보다 작업 시간과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19:39]
9. 연대를 추적할 단서가 된 67개의 화물표
- 화물 사이에서 발견된 나무 조각은 모두 67개로, 종이를 대신해 글을 적은 화물표였다. 유물의 생산·운송 시기를 밝힐 결정적 자료가 됐다 [21:09]
- 고려 시대 배에서 대나무 화물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먹글씨가 남아 있어 연대와 화물 정보를 직접 판독할 수 있었다 [22:02]
10. 취약한 화물표의 보존과 운송 정보 판독
- 화물표는 겉모양이 남아 있어도 대나무 속이 비어 있어 작은 충격에도 부서질 수 있었다. 소금기를 제거하고 약품에 담그는 보존 처리가 진행됐다 [22:42]
- 위쪽 양면의 작은 홈은 끈을 묶는 자리였다. 화물표에는 수신자·화물 종류·수량이 적혀 있었고, 일부에는 발신지와 발송 날짜까지 남아 있었다 [23:04]
11. 간지와 수신자 이름을 결합한 연대 추정
- 화물은 정묘년에서 무진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송됐다. 간지만으로는 고려 시대의 어느 해인지 특정하기 어려웠다 [23:29]
- 같은 사람에게 보낸 화물표 여섯 개에는 ‘대장군’이라는 관직과 김순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의 재직 시기를 확인하면 간지가 가리키는 연도를 좁힐 수 있었다 [24:24]
12. 역사 기록으로 확인한 1208년의 항해
- 『고려사』에는 김순영이 최충헌 집권기에 역모를 밀고한 대가로 대장군에 임명됐다는 기록이 있다. 최충헌 사돈의 묘지명에도 같은 인물로 판단되는 장군의 이름이 등장한다 [25:01]
- 김순영의 활동 시기와 간지를 대조한 결과, 정묘년과 무진년은 1207년과 1208년으로 특정됐다. 마도 1호선은 1208년 전라남도 지역에서 출발해 항해하다 태안에서 좌초한 것으로 해석됐다 [25:28]
13. 절대 연대가 요구한 청자 편년의 수정
- 마도 1호선 화물의 연대가 밝혀지면서, 더 이른 시기에 사라졌다고 여겼던 대량생산 방식과 문양이 13세기까지 사용됐음이 확인됐다 [25:59]
- 기존에 11세기 것으로 판단했던 받침 방식도 더 늦은 시기까지 이어졌다. 제작 기법과 문양만으로 청자의 연대를 추정하던 기준을 수정할 필요가 생겼다 [26:15]
14. 젓갈 화물표와 도기에 남은 실제 음식물
-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으로 보내는 화물표에는 젓갈 한 항아리가 적혀 있었다. 마도선에서는 먹거리 기록뿐 아니라 당시 음식물의 실제 흔적도 출토됐다 [27:24]
- 다양한 크기의 도기는 주로 음식물 저장에 사용됐으며, 고려 시대 배에서 자주 발견되는 품목이었다. 마도선의 항아리에는 뻘과 함께 유기물이 남아 있었다 [28:27]
15. 밴댕이와 농게 젓갈이 보여주는 식생활의 연속성
- 한 항아리에서는 밴댕이 젓갈로 추정되는 밴댕이 뼈가 다량 출토됐다. 다른 항아리에서는 갯벌에 사는 농게를 젓갈로 담가 먹었던 흔적이 확인됐다 [29:31]
- 고려 시대 밥상에 올랐던 젓갈이 오늘날에도 이어진다는 점과, 당시 음식물의 흔적이 배 안에 남아 발견됐다는 점이 식생활을 복원할 직접 근거가 됐다 [29:59]
16. 젓갈은 선원들의 반찬을 넘어선 운송 화물이었다
- 선원들이 배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면 반찬도 필요했겠지만, 발견된 젓갈의 양은 소수 선원의 식량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았다. [30:48]
- 지난 8월까지 발견된 도기는 38점에 이르며, 화물표에도 젓갈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31:03]
17. 고등어젓갈의 전승과 젓갈의 영양·보존 기능
- 진도 출신 김명자 씨는 고향에서 대대로 내려온 방식으로 고등어젓갈을 담근다. 할머니들이 만들던 음식을 어린 시절부터 보고 배웠다. [32:22]
- 800년 전 고려인의 음식인 고등어젓갈은 남도의 섬 지역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32:32]
18. 규격화된 메주와 귀족 중심의 된장 소비
- 마도선에는 메주도 실려 있었다. 장의 원료인 메주가 당시 유통됐으며, 고려사에는 그 규격이 기록돼 있다. [33:54]
- 기록에 따라 복원한 메주는 길이 약 30.3cm, 너비 9cm, 높이 2.7cm의 길쭉한 직육면체이며, 무게는 900g을 조금 넘는다. [34:36]
19. 대량의 벼와 곡물 껍질이 남긴 식생활 증거
- 마도선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먹을거리는 쌀이었다. 섬자리도 일부 남아 있어 많은 양의 벼를 가마니에 실어 운반했음을 알 수 있다. [35:53]
- 낟알은 800년이 지난 뒤에도 외형을 유지했지만, 분석 결과 내부의 쌀 부분은 오랜 수침으로 사라지고 벼껍질만 남아 있었다. [37:00]
20. 고려의 벼는 현대 벼와 닮았지만 재배 특성은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 고려의 낟알은 현대 것보다 조금 작아 보이지만 형태는 비슷하다. 분석에서는 현대 벼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찾기 어려웠으며, 청동기·삼국시대 벼보다 현대 벼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37:49]
- 전문가들은 자포니카 계열로 보고 있다. 다만 당시 벼는 오늘날의 개량종보다 키가 크고 까락이 많아 수확에 불편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낟알의 특성은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38:41]
21. 쌀 소비의 계층 규제와 귀족에게 향한 식재료
- 고려에서는 국가가 계급에 따라 식생활을 규제하기도 했다. 농민에게 햅쌀을 국가에 바치고 묵은쌀을 먹게 하거나 조를 권장했다. [40:07]
- 마도선에 실린 대량의 쌀과 음식물 역시 귀족들에게 보내던 것이었다. [40:16]
22. 선체 인양에는 목재의 건조를 막는 보존 처리가 필요하다
- 발굴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마도 2호선의 선체 인양이 시작됐다. 바닥을 이루는 목재 한 부재의 너비가 35cm에 이를 만큼 견고하게 지어졌다. [41:05]
- 오랫동안 물속에 있던 목재는 세포가 분해되고 물로 채워져 공기 중에서 마르면 변형된다. 인양한 부재는 부직포와 비닐로 감싸 수분을 유지한 채 처리 시설로 옮긴다. [41:40]
23. 두꺼운 목재와 평평한 바닥으로 만든 고려의 운송선
- 마도 1호선은 다른 선박보다 부재가 두껍고, 일부에는 활엽수를 사용해 단단하게 만들었다. [42:39]
- 바닥은 두껍고 견고한 목재를 평평하게 이어 붙였고, 옆면은 더 얇은 목재를 겹쳐 만들었다. 나무못과 긴 버팀 부재로 외판을 고정하는 전통 제작 방식을 따랐다. [43:11]
24. 문헌에 없는 고려의 석탄 운송과 별공품 가능성
- 마도선에서는 당시까지 수중 발굴에서 발견된 적 없던 석탄이 상당량 나왔다. 고려사에는 석탄에 관한 기록이 없다. [44:56]
- 고려에서 광물은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하던 품목이었다. 석탄의 양이 배 안에서 쓰는 연료로 보기에는 많아, 남쪽에서 생산된 석탄을 별공품으로 개경에 운송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45:45]
25. 전남의 항구와 곡창지대가 화물의 출발지였다
- 화물표에 나타난 출발지는 회진·죽산·수령현으로 압축된다. 현재의 지명으로는 각각 전남 나주·해남·장흥 지역에 해당한다. [46:25]
- 옛 죽산현 인근 공세포는 지금은 간척으로 농지가 됐지만 과거에는 항구였다. 남아 있는 우물은 선원들이 항해에 필요한 물을 길어 가던 곳이다. [47:18]
26. 공적 운송선이면서 개인에게도 화물을 보낸 비정기 세곡선
- 마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배들은 모두 대량의 쌀을 싣고 있었다. 곡창지대를 낀 출발지를 고려하면 조창에 모인 세곡을 개경으로 운송하던 공적 성격의 배였을 가능성이 높다. [48:33]
- 다만 국가 운송선이라면 관청이 수신처여야 하는데 화물표에는 개인이 나온다. 천 석을 실었다는 대형 조운선과의 규모 차이도 있어, 작은 배로 비정기 곡물 세금이나 관리에게 보내는 선물을 운송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49:30]
27. 암초·급류·안개가 겹친 태안 앞바다의 침몰 위험
- 개경으로 가려면 통과해야 했던 태안 앞바다는 통행이 어려운 여울목이라는 뜻의 난행량으로 불렸다. 섬과 암초가 많아 해저 지형도 복잡하다. [50:27]
- 관장목은 밀물과 썰물이 만나 거센 물살을 이루는 곳이다. 조류와 바람에 의존하던 옛 배에는 위험이 컸으며, 잦은 안개도 시야를 가렸다. [51:48]
28. 다양한 닻돌과 미완성 운하가 보여주는 해상 교통의 난관
- 발굴 현장에서는 사람이 깎고 다듬은 여러 크기의 닻돌이 발견된다. 큰 닻돌은 마도 2호선보다 훨씬 큰 배도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53:48]
-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 사고가 빈번하자 고려 인종은 위험한 바닷길을 피하려고 굴포에 운하를 파려 했다. [54:02]
29. 침몰선의 화물이 문헌 밖 고려인의 생활을 복원한다
- 1208년 전남에서 생산된 여러 화물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고려배는 태안 앞바다에서 거센 조류와 파도를 만나 침몰했을 것으로 재구성된다. [55:13]
- 800년 뒤 발견된 배와 화물은 당시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간직하고 있어, 기록이 전하지 못한 고려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자료가 된다. [55:35]
🧾 결론
- 침몰선의 가치는 개별 유물뿐 아니라 물품·포장재·화물표가 함께 남아 있다는 데 있다. 이 조합으로 무엇을 어떻게 사용하고 누구에게 보냈는지 연결할 수 있다.
- 화물표의 날짜와 수신자를 문헌 기록과 대조하면서 청자의 제작 시기를 판단하던 기존 기준을 수정할 근거가 생겼다.
- 음식물과 선상 생활용품은 문헌에 부족한 고려인의 생활상을 구체화한다. 다만 귀족에게 보내던 화물을 고려인 전체의 일상으로 확대해 해석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 투자·시사 포인트
- 자료를 평가할 때는 외형적 희소성뿐 아니라 출처·연대·사용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 이 발굴에서는 청자와 동봉된 화물표가 유물의 해석을 바꿨다.
- 운송 체계의 성격은 화물량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대량의 쌀, 개인 수신자, 선박 규모를 함께 검토해야 공적 운송과 개인에게 보내는 물품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 생산지와 소비지를 잇는 물류에는 항로의 제약이 작용했다. 평저선의 구조, 태안의 암초·급류·안개, 우회 운하 시도는 해상 운송의 조건과 위험을 보여준다.
- 보존 처리는 지식을 확보하는 기반이다. 글씨가 남은 화물표와 형태를 유지한 목재도 손상될 수 있어, 기록과 보존이 이후 분석의 가능성을 좌우한다.
⚠️ 불확실하거나 확인이 필요한 부분
- 꿀 운송은 화물표 기록으로 확인됐다. 두 매병 내부에서는 뻘 외에 특별한 내용물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꿀 자체가 남아 출토된 것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
- 1208년 항해 해석은 마도 1호선에 관한 것이다. 이를 마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모든 침몰선의 연대로 적용할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 비정기 세곡선이라는 성격, 석탄의 별공품 운송, 암초 충돌에 따른 침몰은 자료를 종합한 추정이다. 확정된 기록과 구분해야 한다.
- 자막 기반 정리: 타임스탬프가 있는 자막을 기준으로 정리했으며, 고유명사·수치·인용은 원문 확인 필요 시 별도 검증한다.
- 영상 속 주장: 발표자의 해석·전망·비교는 확인된 외부 사실이 아니라 영상 속 주장으로 분리해 읽는다.
- 검증 필요: 수치, 기업 실적, 정책·시장 전망은 발행 전 최신 자료로 별도 검증이 필요하다.
✅ 액션 아이템
- 주요 주장마다 근거가 실물 분석인지, 화물표 판독인지, 문헌 대조인지 구분해 기록한다.
- 매병의 꿀 운송, 젓갈의 실제 잔존물, 고등어젓갈의 화물표 기록을 각각 구분해 정리한다.
- 마도 1호선의 연대 추론을 간지 → 김순영의 활동 시기 → 1207·1208년 특정 순서로 확인하고, 다른 선박과 혼동하지 않는다.
- 세곡선의 성격·석탄의 용도·침몰 원인에는 추정 표시를 붙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단서를 함께 적는다.
❓ 열린 질문
- 공적 성격의 운송선에서 개인 수신자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세곡·별공품·선물은 어떻게 함께 운송됐을까?
- 상당량의 석탄은 실제로 개경에 보내던 별공품이었을까? 이를 판단할 추가 자료는 무엇일까?
- 마도 앞바다의 각 선박은 어떤 상황에서 침몰했으며, 선체 손상과 유물 분포로 원인을 더 좁힐 수 있을까?